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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규 23 무관학교(吉林武官學校)설립기금조달을위하여신의주에서파 송된김로봉(金盧鳳)과함께창녕(昌寧)부호하경석(河慶錫)집 에침입하여거금인3천원을성금으로낼것을강요하였다.하경 석이이에응하지않게되자150원을강탈하여서울의황상규에 게전달하러가는도중에김명규는체포되었다.이사건으로김 명규는1920년12월28일부산지방법원에서강도죄로징역7년 의선고를받고부산형무소에서옥고를치렀다.출옥후김명규 는1929년동아일보밀양지국기자와밀양기자단이사를역임하 였다.이당시황상규가신간회밀양지회장으로활동한것을감 안하면김명규는황상규와함께비타협민족운동노선을견지한 것으로여겨진다.1945년8․15조국광복을맞은뒤김명규는밀 양부북과하남등의수리조합이사를역임하였고1956년3․1절 때밀양읍장으로부터독립유공표창을받았다.김명규는1977년2 월10일사망하였는데정부는그의공훈을기리기위해1977년 건국포장을추서하였다. ▣부경역사연구소연구원김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