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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부산을빛낸인물(Ⅰ) 238 일본에의해우리나라의국권이탈취된해였다.다대실용학교를 졸업한한상동은1916년3월동래고등보통학교에입학하였다.얼 마후그는일본에건너가큰꿈을키우고싶어양부모몰래일 본유학을위해밀항을했다가경찰에붙잡혀다시고향으로되 돌아왔다. 한상동이동래고보를마친다음해인1919년3․1운동이일어 났다.이때는한상동이실용학교교사로막들어갔을때였다. 한상동은만세운동에참가하기위해한문서당으로쓰던옛군 관청에숨어서밤을세워가며수천장의태극기를만들었다.그 러나일본순사가이를알고달려온다는기별을받고천장을뜯 어서태극기를숨기고피신했는데,감시가심해결국은다대포에 서만세운동을일으키지는못하였다.스무한살이된청년한상 동은1921년5월31일기장에사는김두경의딸김차숙과결혼 했다. 그해가을한상동은병원에가서진찰을했더니결핵이라는 진단이나왔다.이후실의의나날을보내게되었다.그러던중 1924년2월다대포에교회가세워졌다.한상동은전도사박창근 을만나믿음을가지게되었다.이교회에등록한첫교인이되 었다. 그런데한상동의믿음생활은순탄하지못했다.마을사람들은 예수에미쳤다고했다.그의양부모는예수쟁이가된아들을몹 시못마땅하게여겼다.양부모로부터파양(破養)선고를받고학 교교사도그만두게되었다.1927년다대포를떠나호주선교사 가경영하는기독교계학교인진주광림학교교사로부임했다. 이듬해인1928년한상동은성경공부를하기위해서울로올 라가피어선고등성경학원에입학하여1년정도신학을수학한 후,1929년3월경남고성군하일면학림리에서개척전도를시 작하여삼랑진,하동군진교등지에서전도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