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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부산을빛낸인물(Ⅰ) 236 도있었다.그러나그는결혼은오직한번하는것이라하여자 신의소신을굽히지않았다.그렇다고두고온고향과가족그리 움이어찌없었겠는가.1990년6월그가남긴글망향편지는읽 는이로하여금심금을울리게한다.“창문을두드리는빗소리가 당신인듯하여잠을깨었소.그럴리가없지만혹시하는마음에 달려가문을열어봤으나그저캄캄한어둠뿐,허탈한마음을주 체못해불을밝히고이편지를씁니다.여보.”로되어있다.얼마 나애절한사연인가.이렇게뼈에사무치는가족그리움을그는 불우한이웃들에기울이며그리움과외로움을달래었다.94년제 2차이산가족고향방문단의일원으로확정되었을때의기쁨은 한량없었으나교환합의가무산되었을때의그의실망은말할수 없었다는사실은그의주위를지켜본이들의말이다.옷두벌이 면한벌은어려운이웃에게주고평생을집한채,재산하나 없이무소유(無所有)를실천해온그는끝내두고온가족을그 리며항년85세로95년12월25일성탄절의새벽종이온누리로 울릴때서울백병원에서소천하였다.그는그이전에아들가용 에게그의비문에는“주를섬기다간사람”이라적어달라는유 언까지남겼다.그의소천이후그의순결,청빈,박애그리고의 료인으로서의헌신과연구정신을기리기위해그의기념사업회 조직을96년부산에서발기하여여러차례준비모임을가졌고97 년에는서울지역에서준비모임이있었다.이부산과서울의준비 모임이어우러져97년7월12일서울대학병원A강당에서‘성산 (聖山)장기려선생기념사업회’가조직되었다.이는그의업적을 기리는뜻도크지만그가남긴삶의길을이어받자는데보다 큰뜻이있다고하겠다. ▣소설가․향토사학자최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