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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려 231 전문학교를졸업한그해4월9일김봉숙(金鳳淑)과결혼했다.그 때의나이는22세였다.그는외과의로나아가게되었는데그렇게 된것은경성의과전문학교조수로있으면서장인이된내과의 김하식(金夏植)교수의권유로백인제(白麟濟:당시국내刀圭界 의제일인자로1936년백병원을개원)박사문하가되어외과를 전공한데있었다.그동안그는후복막봉과직염(後腹膜蜂窠織炎) 과패혈증(敗血症)에관한연구를한한편1940년9월에는‘충추 염및충추복막염의세균학적연구’라는연구논문으로일본나고 야(名古屋)대학에서의학박사학위를받았다.그동안경성의전 외과에근무하던그는1940년3월평양의연합기독병원의외과 과장으로자리를옮겼는데두달뒤는병원장이되었다.그러나 병원내부의의사들사이에서갈등이있자,두달만에병원장자 리에서다시외과과장으로내려일하게되었다.그는원장이나 과장같은직급에구애없이환자를보는일을천직으로여기면 서성심성의진료와시술에전념하였다.임상(臨床)에서얻은꾸 준한연구로42년에는후학인민관식(閔珖植)과함께논문‘농흉 (膿胸)에관한세균적연구’를조선의학회지에발표하고단독으 로연구한‘근염(筋炎)의조직학적소견’을일본의의과학회에발 표하고43년에는간상변부에발생한간암의설상절제수술(楔狀 切除手術)을실시하고그수술결과를조선의학지에발표하여의 료계의주목을받았다.45년8월해방을맞은그해11월에는평 양도립병원장겸외과과장의일을보았다.47년1월에는김일성 대학의외과대학의학과교수겸부속병원외과과장으로일했다. 이대학병원으로갈때는공산주의체제가되어종교를인정하 지않았으나그는주일에는일할수없다는조건을내세워그 승낙을받았고환자를수술할때는먼저하나님에기도할수있 는행위의허용을받는등독실한기독교신자로서의자세와신 앙심을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