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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부산을빛낸인물(Ⅰ) 224 가회동박진(朴震)의집에서과학적정치노선의확립과실천을 위해김창숙을수석의장으로하는민족전위당적성격의민족건 양회를창립한다.민족건양회는민족의혁명적건설을보다높은 역사의차원으로지양하는서민성(庶民性)자본민주주의민족혁 명과민족자주강화에서외세를영어(領御)하는통일건국노선을 지향하였다.또한외압과봉건제와민족매판및자본집중을반 대하는민족화민주주의를지향하였다.민족건양회의외세에대 한기본입장은1945년12월말모스크바삼상회의결과에대한 대응에서잘드러났듯이,민족자주는결코국제우호와대립된개 념이아니라하였다.민족건양회는1960년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 회(이하민자통)조직으로발전하였다. 민족건양회노선에바탕하여1947년에이르러이극로,정이형 등과함께‘이균(李鈞)’이라는이름으로민주주의독립전선을결성 하였다.여기서조선독립은미․소공위의조속한성공과동시에 자주적입장을견지하는것이중요하다고보았다.이무렵김규 식이명예사장이며신익희등이고문으로있었던민주일보 (1946.6.1창간)편집국장과주필등을역임하며언론활동도전개 하였다. 이종률은6․25를민족혁명운동노선의방향에서‘6․25동란’ 으로표현한이전쟁을민족의참화로인식하였다.이는생의마 지막순간까지민족혁명운동으로서통일운동에모든노력을경 주하게된또하나의출발점이되었다.이무렵대구청구대학 재직중6․25를맞이하였던이종률은1951년봄경남안의중학 교교감으로잠시봉직하였다.그러다가임시수도부산에있던 부통령이시영(李始榮)의부름으로부산대정치학과교수로부임 하여1961년초까지재직하였다. 1956년대통령선거에서민족건양회의화평통일론에바탕한비 무력정치협상민족통일을주장한신익희후보진영에참여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