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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부산을빛낸인물(Ⅰ) 20 이무렵앞서살펴본동래고보4학년김인호(金仁浩)중심의 학생모임은,곽상훈선배가이환선생집에왔다는소식을듣고 곽상훈과이환선생을만나게된다.거기서학생들은자신들이거 사를추진중이라는사실을두분께전달하였다.그결과청년들 은청년들대로,재학생은재학생대로각각준비하기로의견일치 를보았다.당시동래고보에는김병규(金秉圭,해방후경남도지 사역임)선생이지리를담당하면서몰래한국사를학생들에게 강의하고있었다.그때문에많은학생들이민족의독립에상당 한관심을갖고있었다.마침내재학생들은동래읍칠산동학소 대(鶴巢臺)근처에산재해있는학생들집과복천동의엄진영집 사랑채,오종식(吳宗植,2학년)집사랑채,그리고수안동에있던 이한주(李漢周),정호종,백정기(白正基,2학년)등의하숙방을전 전하면서모의를계속하였다.그결과시위는3월13일(음력2월 12일)동래장날[場日]정오때하기로최종결정을보았다.그리 하여학생들은자신의하숙방,학교의구석진창고등지에서태 극기를만들고,독립선언서는학교근처서원(書院)에살고있던 박달용(朴達鎔)의거처에서학교등사판을가져다서진령,엄진영, 김인호등이교대로원지를긁어500매를인쇄하였다.그리고같 은장소에서다른주동자들은“대한국독립만세(大韓國獨立萬歲)” 라는2개의큰기치와수백매의태극기및“오왕약살(吾王藥 殺)”이라고크게쓴수백매의삐라를준비하였다. 마침내3월13일거사당일학생들은선언서와태극기를각자 품속에숨겨서나오기도하고일부는부인네들이감추어운반하 기도하였다.이사이장터로통하는길목마다학생들은지켜서 서믿을만한장꾼들에게선언서를배부하였다.이미학생들대 부분은장꾼들틈에섞여서성거리고있었다.약속된시간이다 가오자사립동래고보학생40명은미리준비한계획대로2개의 분대로나뉘어행동을개시하였다.제1대는동래군청앞에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