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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 203 선학원대중80여명이조계사로향하는모습 (왼쪽부터청담스님,효봉스님,동산스님) 호를위해승풍의정화, 대처승의비리척결을결 의했다.이대회에서법 상에등단한동산은일제 의강압으로인한잘못된 불교를바로잡고조사(祖 師)의종풍을다시일으 켜세울것을역설하였 다.그러나그와같은종단의여망에도불구하고일제는오히려 비구승대회가비법임을주장하며선학원을중심으로하는비구 승세력을제거하려는작업에착수하였다.그로인해일부승려 들은산속으로은신하거나재가신도로되돌아가는사태를빚게 되었다.일반인들의경우,정쟁과전란의소용돌이속에서이와 같은정법수호의움직임에동참하기보다는불교는오히려싸움 만하는종교정도로생각하고수수방관하는게대부분이었다. 1945년일제가패망하고드디어해방을맞았으나불교종단의 암운은가시지않았다.각지의뜻있는승려들은정법수호의기치 를내걸고다시절을찾아모여들었지만해방초기의혼란을틈 탄종권다툼은끊일새가없었다.전국의사찰에서는비구니대 처니해서싸움이그칠날이없고,절을뺏고뺏기는싸움은급 기야유혈사태까지초래하게되었다. 1950년,한국전쟁으로부산에는피난민들이인산인해를이루었 다.범어사에도피난온전국의수행승들이몰려들어금어선원 은결제해제없이초만원을이루었다.당시종무소를관장하고 있던대처승측원주는사중전답(寺中田畓)에서나오는식량으로 고작20명분을선원에대주고있었으나금어선원에는1백여명의 납자가운집했다.동산은평소에도후학들을사랑해참선을하겠 다고찾아온사람이면누구라도환영했다.그래서동래군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