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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부산을빛낸인물(Ⅰ) 202 夜來依舊捉老鼠밤이되면예전처럼늙은쥐를잡는다 이후3년동안고된보임공부를마친동산은1930년11월드 디어용성선사로부터법인(法印)을전수받았다.동산은안으로 는조실(祖室)로서경향(京鄕)각지의납자들을지도하는데힘 을기울이는한편,1937년에는서울선학원(禪學院)에서열렸던 전국선승유교법회(全國禪僧遺敎法會)에참석하여불교의앞날을 염려하는일에도적극동참하였다. 불교 정화운동(淨化運動)과 동산 근대한국불교의흐름에있어특기할만한일가운데하나로 서「정화운동」을꼽을수있다.일본은한국을강제로점령한 직후일본식의불교를신봉하도록강요했다.앞서언급한바와 같이「조선사찰령」의반포로본사(本寺)중심제의불교운영이 이루어지게됨과동시에그주지직은총독부의명령을따르도록 하였다.일제는식민화정책을내세워사찰이점유하고있던토 지에눈독을들였다.먼저땅을빼앗기위해사찰에거주하던승 려들을몰아내려는음모를꾸미게된다.이와같은외부적모략의 일환으로시행된것이승려의대처(帶妻)제도이다.이들대처승 가운데다수는승려라기보다는오히려무뢰배의집단인경우도 적지않았다.민족불교의독자성을말살하려는일제식민정책의 비호아래대처승들은사원의운영을장악하고교단의종권까지 넘보게되었다.이러한가운데뜻있는비구승들은최후의보위책 으로서1926년12월재단법인「조선불교선리참구원(朝鮮佛敎禪 理參究院)」,곧현재의선학원을설립하였다.이곳은비구들의수 행처였고또한이곳을근거로하여종풍(宗風)의중흥을도모하 게되었다.1941년선학원에서당대의원로대덕들이참석한가 운데「비구승대회」를열고불타의선지(禪旨)규명과정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