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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 201 1919년3․1운동이일어나자동산은서울로올라왔다.용성선 사와만해(萬海)한용운선사가불교대표로33인에참가,옥고를 치르게되자동산은낮에는용성선사의옥바라지에혼신의노 력을기울이는한편,밤에는서울도봉산망월사에올라가장좌 불와(長坐不臥)로정진하였다.만해선사의옥바라지를맡았던 도반(道伴)춘성(春城;1891~1977)수좌가곁에서동산의건강을 염려하며밤에는좀쉬도록권하였다.그러나동산은“우리스님 은감옥에서고생하시는데내어찌편한잠을잘수있겠소?”하 며좌선자세를풀지않았다.3년동안용성선사의옥바라지를 끝낸동산은오대산상원사,금강산마하연,속리산복천암,태백 산각화사등을찾아다니며정진하였다.전국의선원을돌며한 철씩정진하다가1924년4월부터는김천직지사에서3년결사 (結社)를시작하였다.결사란불도(佛道)수행의큰효과와목적을 위하여여러사람이합동하여단체를결성하고수행하는데장애 를없애기위하여의식주(衣食住)를특별히제한하는수행이다. 직지사에서3년결사를마치고1927년부산범어사선원으로돌 아와여름안거에들어갔다.동산은금어선원동쪽에있는대나 무숲을좋아하여방선(放禪)시간이면자주그곳을거닐었다.그 날도대숲을거니는데바람에부딪히는댓잎소리가유난히청아 했다.그순간가슴속의어둠은씻은듯이사라지고수천근(千 斤)의무게로짓누르던의심의무게가순식간에사라졌다.의사 의꿈을버리고출세간(出世間)의장부로서만중생(萬衆生)들을 건지겠다는원력을세워참구한지15년만에드디어활연대오 한것이다.다음게송은그때의소식(消息)을표현한내용이다. 畵來畵去幾多年그리고그린것이그몇해던가 筆頭落處活猫兒붓끝이닿는곳에살아있는고양이로다 盡日窓前滿面睡하루종일창앞에서늘어지게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