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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부산을빛낸인물(Ⅰ) 200 것이아니었다.흥사단의국어연구회에나가기도하고,서울종 로구봉익동에있는대각사(大覺寺)에나가용성(龍城)선사로부 터불교에대한가르침을받기도했다.의전에다니는동안동산 은언론인이며서예가인위창(葦滄)오세창(吳世昌)의집에머물 렀는데위창은동산의친고모부이자민족대표33인의한사람이 기도했다.위창선생과용성선사는1864년[甲子生]동갑으로자 주만나국사를걱정하며동지의정을두텁케한사이였다.동산 이대각사를찾게된것도위창의영향이컸다.용성선사는일 제(日帝)가민족불교를말살하고일본식불교를이땅에심고자 획책할때를대비해일찌감치대각사를창건했던것이다.과연 대각사가창건되고얼마안되어일제는7개조로된「조선사찰 령(朝鮮寺刹令)」을반포,‘31본산의주지는조선총독에서,그외 의사찰주지는지방장관의인가를얻어야한다’고규정하였다.용 성선사는동산을처음만나자“인간의신병(身病)은의술로어 느정도치료한다지만마음의병은무엇으로다스리겠소?”하고 물었다.이물음에동산은적지않은충격을받았다.그리하여 자주대각사를찾아용성선사로부터“불교는만법(萬法)의근원 이며우주의근본으로서마음의병을다스리는종교”라는설법 을들었다.불법에서인생에대한의문을하나씩둘씩풀어가면 서동산은출가를결심하고1912년범어사금어선원(金魚禪院)에 서수계하니법명은혜일(慧日)이며법호는동산이었다.이때부 터범어사강원에서「능엄경」을배운것을비롯하여스승인용 성선사에게는「전등록(傳燈錄)」「염송(拈頌)」「법망경」등을수 학하였다.평남맹산군의우두암(牛頭庵)에안거중이던한암(漢巖) 선사로부터는「기신론(起信論)」과「금강경」,「원각경」,「사교 (四敎)」를배웠다.삼장(三藏)을두루수학한동산은참선공부를 위해걸망하나를메고운수객이되어전국의제방선원을돌며 3년간의용맹정진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