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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부산을빛낸인물(Ⅰ) 194 이로부터20여년간경허는천장사와수덕사를비롯한여러사 찰을오가며선납((禪衲)을지도하였다.당시불교교단은조선시 대초기부터시작된억불정책으로말미암아극도로위축된상태 였다.사원은피폐하고승려들은앞을다투어산문을등지게되 었다.그에따라수도량(修道場)의개설이나참되게수행하는모 습을찾아보기힘든실정이었다.경허가주관하는선수행도량이 여기저기창설되면서염불주력(呪力)위주였던승려들의고식 적수행방편이크게바뀌어선풍이중흥되었다.한편경허는금 강산유점사․석왕사등에머물면서후학을지도하기도하고석 왕사오백라한(五百羅漢)개금불사와해인사대장경불사에증사로 참여,법문을하였다.경허의선맥을이어간법제자만공(滿空), 한암(漢巖),혜월(慧月)등은이무렵에경허의가르침을받았다. 범어사 선원 개설 경허가남행하여범어사에왔을때는이미선사로서명성이 널리알려진후였다.범어사는조선시대왜군의침략을막아내는 최전선기지였던금정산성에위치한관계로전통적으로대왜(對 倭)방비의책무를지고있던사찰이었다.유사시엔군막을치고 승병을양성하는등범어사가병참의일익을담당하지않을수 없었다.게다가범어사는임진왜란당시에가장먼저왜군에게 함락당한동래부중에있었고동래성의함락과함께밀어닥친 왜병들의방화와약탈로인해피해가극심했다.그결과참다운 수행방법에의한선풍은땅에떨어지고기복적(祈福的)형태의 불교가겨우명맥을잇고있었다. 1898년경허는영남최초로범어사에선원을개설하고“반야 (般若)위에헛된공부가없다고하였으니만일성불의원이있 는자는마땅히깊은마음으로큰원을발할진저”라고법어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