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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부산을빛낸인물(Ⅰ) 178 부산항일학생의거부산시서구구덕 터표석 운동장앞 21.부산항일학생의거(소위「노다이」사건) 일제하항일학생운동은3․1 운동에서이미드러났듯이식 민지시대민족운동의한축으 로서전개되었다.특히1920년 대이후에는학생들의독서회 형식을통한소모임이확산되 고유학생들을통해새로운 사상조류를받아들이면서항 일의식또한한층강화되고과학화되었다.즉이전까지의다분히 정서적반일․항일운동이아니라뚜렷한철학적기반을지니고 사회과학적분석위에서운동을수행하게된것이다.더불어이 러한변화는3․1운동이후급성장한노농운동등의민중운동 과청년운동등부문운동의활성화에힘입은바가크다.이러한 운동의발전을바탕으로항일학생운동은일본인교사의부당한 대우에맞서교육조건을개선하는학내투쟁으로부터민족고유의 정신을지키기위한문화운동,사회모순을직면하여개선을추구 했던사회정치운동등다양한영역에서꾸준하게진행되었다.항 일학생운동사에있어이렇게축적된역량이폭발한것은두번 의경우라할수있는데그하나가광주항일학생의거이고또다 른하나는부산항일학생의거(소위노다이사건)라할것이다. 일제는1937년7월중일전쟁을일으킨후식민통치안정을위 해일본경찰과경찰의보조기관인경방단원을크게증원시켰다. 특히일제의침략전쟁에필요한인적물적자원을동원하기위해 각종의동원령도내렸다.즉,1938년의<국가총동원법>과<육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