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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부산을빛낸인물(Ⅰ) 156 석방한달도못되어병사했다.차병곤의영결식은경남건국준비 위원회에서사회장으로결정,부산진교회주관으로이루어졌는데 당시민주중보1945년9월21일자사회면에“민족해방의용사 ‘순국당’단장차병곤군영결식”이란3단제목으로보도되었다. 이기사에는“영결식에유족당원동지경남장로회조선소년대 부산진치안대원등500여명이참석했고장지좌천동공동묘지 로향했다.”고기록되어있다.이관수역시모진고문의후유증 으로끝내건강을회복하지못하고51년사망했다.이밖에김진 옥외3명(신정오,박태권,아사모토)는그당시의혹독한옥고후 유증으로고생하다가수를다하지못하고유명을달리했으며13 명중생존자는6명뿐이었다.해방후배봉수는동래중학교에복 교했고박정오,윤창석은시험을쳐서동래중학교에입학했다. 이상을통해우리는동고를중심으로한부산지역항일학생 운동의흐름을살펴보았다. 일제전기간을통해이루어졌던동고의학생운동은1930년대 후반까지학생운동은사회주의이론연구비밀독서회와각종계 몽운동을추진하는비밀결사로양분되었기때문에양자간에실 질적인결합이힘들기도했으나1940년이후무렵부터는민족주 의와사회주의등이념적차이를불문하고반일의기치아래여 기에찬동하는모든세력을결집하려는시도를가졌다. 물론이시기학생운동은고립분산적이고자연발생적이었고, 대부분실행의단계를거치지못하고계획단계에서와해되는 한계를지녔다.하지만이런민족해방운동의경험은해방공간에서 새로운민족국가를수립하기위한운동의주요한밑거름으로이어 졌다.이와같이일제시기간단없이이어졌던동고의항일학생운동의 역사는,일개학교의역사로끝나는것이아니라부산지역운동사의 빛나는전통으로이어져오늘날에도생명력을지니게되었다. ▣경성대학교교수강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