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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고보항일학생운동 153 영향때문이었다.독서회에서활동한이들은1941년겨울등화관 제아래서김일규자택에서조국에목숨을바칠것을맹세하고 과거의독서회를‘조선독립당’이라개칭했다.이후1942년초봄 남기명자택에서2차모임을갖고‘우리는조국의독립을위하여 목숨을바친다’는강령을채택하였고이관수,문인갑,백기호,김 영찬등과함께‘조선독립당’을발족했다. 이들은모임에서임시정부에관한책,우리문화에관한책, 과거각민족의독립투쟁의역사기록그리고일본인서점박문 당에서판매했던<월간러시아>등의서적을수집․회람하고토 론도했다.그중특이한역사기록은폴란드가제정러시아를 상대로싸웠던항쟁사나제1차대전때전쟁의동기가되었던 세르비아의19세상업학교학생푸린치푸의거사상황등이었다. 그후에도여러차례비밀회합을거듭하면서부서에충실할것 을맹세하고비밀을유지하면서1943년봄졸업과동시에행동 범위를넓히면서연락암호를정하는등실제행동에들어가기시 작했다.그리하여당원은여러곳으로침투활약하고,서울휘문 중학교에서전학온박정기에의해연결된비밀결사인‘자일회’ 와‘순국당’과유대를가지면서기회를보아항일투쟁을광범위 하게전개하려했다. 그러다가1944년8월1일당원7명(문인갑,김영찬제외)은양 중모집에서모여2,3일간에걸쳐그동안의활동보고와정세 분석을하면서시기를보아민심을교란하고일본군탄약고를 폭파하여내란을일으키며이를위해먼저군용열차가구포를 통과할때폭파하기로했다.만약거사가실패할때는모두일본 군에입대하여연합군에투항한후중국에서다시회합하기로 했다.그러나계획을실천에옮기려할즈음‘순국당’당원인차 병곤을위시한당원들이부산북부서에검거되고차병곤과관련을 가진사실을기록한차병곤일기장이발각되어‘순국당’당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