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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고보항일학생운동 151 2년6월의언도를받았다.그런데이사건은당시반제전위동맹 에참가했던이규대와이중희의증언에따르면사건의발단이 경성제대반제부의하부조직이탄로나면서검거된것으로언급하 였다.경성제대반제부는1931년4월경성제대법과신현중이조 규찬등과더불어경성제대1,2,3학년에재학중인독서회소속 학생들을규합하여결성한조직이다.이조직은이후경성치과의 전,제이고보,경신학교,법학전문,기독교청년학관등에조직공 작을벌여경성제대반제부의하부선을꾸리고마침내이들을망 라하여반제경성도시학생협의회를결성했다.이들은출판노동조 합을지도하면서지하출판물로서성대독서회뉴스,반제학생신 문,기타반전격문을인쇄살포했다.성대반제부사건의관계인 원은50명이었는데그중19명이예심종결4개월만인1932년7 월4일부터공판이시작되어그해11월24일19명이징역2˜3 년에서집행유예3년의판결을받았다.따라서동고반제전위동 맹은경성제대반제부의경남지부로서활동한것을알수있다. 한편1920년대이후이어지는동맹휴학의전통은이당시에도 계속이어지며일제에대한저항을뚜렷이했으며이외에도 1937년동래고보조선어연구회의활동은주목할만하다.1937년 미나미(南次郞)총독의부임후내선일체와황국신민화의허울 속에서조선어교육이폐지되자한글의앞날을걱정한동고생들 은허웅을중심으로1936년동래고보조선어연구회를결성했다. 이들은사립동래고보시절동고에근무한적이있는최현배가 지은『중등말본』을각각한권씩구입하여회원들끼리윤독했 으며주로강의는허웅이담당했다.그리고5학년9명은하급생 한명씩맡아서가르쳤다.모임장소는주로하숙집이었고,그곳 을전전하면서도가르침은계속이어졌다.이들은모임을갖고 강의를할때는반드시애국가를먼저부른다음에시작했다.이 모임은15회가졸업하고그뒤1938년에이르러일제의감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