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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지역항일민족운동 141 박영준은6월12일부산지방법원에서징역1년이판결을받고 불복공소하였으나6월28일대구복심법원에서보안법위반죄로 역시징역1년의선고를받아대구형무소에서옥고를치렀다.출 옥후모진고문의후유증으로고생하다가1943년58세로병사 하였다. 1985년일광면에서는칠암리에박영준의의거를기린기념비 를세웠다. 정관 좌천시장 만세운동(장안의거) 이운동이일어난장소는장안면좌천리장터이지만주요인 물들이주로정관사람들이므로정관의거또는좌천시장만세운 동이라고도한다. 1919년4월5일기장읍만세운동후인근의농민과장꾼들의 항일저항의식은높아갔다.이러한가운데기장읍교리김수룡 (기장읍만세시위운동의주동자)으로부터독립선언문을입수한 오해환이그것을오진환(吳進煥),김종복(金鍾復)등에게전달하 면서만세운동이준비되기시작되었다.오해환(吳海煥)은오진환 신두성(辛斗星)김윤희(金允熙)정지모(鄭智謨)박일봉(朴一鳳)등 면내의유지들과함께김종복의사랑방을밀회장소로정하고 동지들을규합하여4월8일장안면좌천장날에거사를도모하 기로결의하였다. 거사에앞서이들은목욕재개하고조룡산산마루와용산암에 서대한독립만세와의거성공을기원하는천제(天祭)를지낸다 음결사구국을맹세하였다고한다. 4월8일좌천장날이되자이른아침부터5-6백명의농민들이 장꾼을가장하여시장으로모여들었고,오전7시경에신두성김 윤희정지모오진환등주동인사들이태극기를흔들며‘대한독립 만세’를소리높여외치자주위의군중들이일제히호응하여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