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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부산을빛낸인물(Ⅰ) 140 그는3․1운동후에도항일투쟁으로두번이나투옥되었으며, 필경에는옥중에서얻은병으로작고하고말았다.1930년6월10 일박용선(朴容善)과함께중국동삼성(東三省)으로망명하여항 일활동을펴다가평남평양(平壤)에서일본경찰에체포되어치안 유지법위반으로평양지방법원에서징역2원6월형을받아옥고 를치렀다.대한민국정부에서는그의공훈을기리어1992년건 국훈장애국장을추서하였다. 일광 의거 기장군일광면이천리에서망건을만들어생활하던박영준(朴 英俊)은기장장날이었던4월5일제조한망건을기장장으로 팔러갔다.그날오전11시경김도엽권철암구수암김수룡최 기복이택규박공표등의청년들이나타나시장한복판에‘조선 독립만세’,‘조선독립단’이라고쓴큰기를세운다음독립선언서 를장꾼들에게배포하고대한독립만세를소리높여불렀다.이에 장꾼들이호응하여독립만세운동이일어나자박영준도시위행진 에가담하였다.기장읍시위운동이해산된뒤자기가살고있는 고장(이천리)으로돌아온박영준은마을주민들에게기장장에서 전해들은전국적으로일어난봉기소식(3․1독립운동)과직접보 았던기장의거를상세하게얘기하고얻어온독립운동서도보 여주었다.그리고마을유지들에게전국적으로일어나고있는 의거에발맞추어의거할것을주장하였다. 박영준과마을유지들은4월11일로거사날짜를정하였다.4월 11일저녁7시경에마을청년50여명과함께‘대한독립만세’를 외쳐부르면서주변마을을누비었고,이에호응한마을주민들이 시위대에가담하였다.이들의시위는밤새이어져서아침이되자 기장에서의시위를진압한헌병과경찰대가시위정보를듣고 출동하여시위군중을해산시키고박영준을체포하였다.체포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