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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지역항일민족운동 135 반일운동은부산지역에서도계속되고있었다. 1917년1차세계대전이끝나고유럽세계의재편과정에서러시 아혁명의영향과더불어나타난‘민족자결주의’의조류는우리 민족에게독립에대한새로운희망을갖게하였다.이를바탕으 로일어난해외에서의독립운동은국내에도영향을끼쳐국내에 서는민족지도자들을중심으로독립선언서가마련되었다.고종황 제의죽음을계기로삼아1919년3월1일서울의파고다공원에 서‘독립선언서’낭독이있었고,이어독립만세시위가시작되었다. 서울에서시작된3․1독립운동은전국적으로번져나갔으며,평화 적인만세시위에대해일본경찰은무력으로탄압하고주민들을 학살하였다.그럼에도불구하고식민지10년간일본의식민정책 에대한민족의불안이쌓여있었고,또한독립열망도고조되었으 므로일제의탄압에도불구하고독립운동은규모나방법에변화 를가져오며전국적으로번져나갔던것이다. 부산지역의3․1운동은3월2,3일경고종인산에참여하고돌 아온사람들을통하여독립선언서가비밀리에전해지면서시작 되었다.3월11일부산진일신여학교(현동래여고)에서가장먼 저독립만세운동이일어났다.3월13일에는동래고보학생이중 심이된수천민중의봉기가있었으며,인근지역인양산과밀양 에서도시위가있었다.19일에는범어사의명정학교와지방학림 학생과군중이합류하여시위를벌였다. 기장읍 만세운동 당시동래군(현기장군)가운데큰읍이었던기장지역에도서 울과부산에서의독립운동시위에관한소식이전해졌다. 3월13일해질무렵김수문(金守文)이라는마부가동래에서주워 온33인의독립선언서를서재선(徐再先)이받아가지고남문앞 축구장에나타났다.이곳에모인김도엽(金度燁)권철암(權鐵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