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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부산을빛낸인물(Ⅰ) 130 민들이이에가세하여그세력이급증하고있어이웃일본군경 을지원받아진압할정도라는내용을보고하고있는사실에서 도구포지역항일독립시위의규묘와시위정도가다른지역보다 크고강열하였음을알수있다. 일본군경은진압과정에서이시위를주도하였던김옥겸(金玉兼) 등11명을체포하여진압하고자하였으나이는구포지역한국민 시위의양상을돌변시키는원인이되기도하였다. 구포시위에가담하였던임봉래(林鳳來),허정(許楨),변봉엽(邊 奉燁),윤정은(尹正殷)등의구포지역청년들이주동이되어구포 지역시위로구금된한국민을석방할것을주장하면서강두조 (姜斗兆),강석이(姜碩伊),김달수(金達洙),김덕원(金德元),김용이 (金用伊),노원필(盧源弼),도우황(都宇黃),박도백(朴道伯),박석오 (朴碩五),박영초(朴永初),박용수(朴龍水),백인봉(白仁鳳),신성 집(申性執),윤경봉(尹敬奉),윤대근(尹大根),윤장수(尹章守),조 해규(趙海奎),진유관(陳有寬),허치옥(許致玉)등과합세하고이 들은1200여명의구포상인과한국민을지휘하여일본순사주재소를 습격하였다.“애국동지석방하라”라는구호를외치면서주재소 내에구금되어있는한국민을구출하려하였던것이다. 그러나지원증강된일본군경의발포로강제해산되는과정에 서쌍방간에다수의사상자가속출하게되었다.일본헌병2명과 일본경찰1명그리고한국경찰1명등4명의부상자와구포시위 한국인9명의부상자가발생하였다. 이러한구포시장터의독립시위는구포지역거주한국인뿐만 아니라구포시장터에모인동래양산김해등지의한국민들도 처음에는시위행위에단순참여하였으나일본군경의탄압과정을 목격한후부터민족적인의분으로적극적인시위가담을하게되 었던것이다. 그리고이들은거주지로귀환하여이러한구포지역의시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