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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지역항일민족운동 129 손진태(孫晉泰),김장학(金章鶴),이몽석(李夢石),양대용(梁大溶), 김영길(金永吉),정치호(鄭致浩),권용학(權龍鶴),안화중(安華重), 허희중(許希中)김윤길(金潤吉)등구포지역의청년유지들에게 준비된독립선언서와태극기를배포하여정오(正午)를기하여구 포시장에모인한국민을대상으로독립시위을거행하였다.특히 박덕홍과안화중은시위대의전면에나서서장터의상인과한국 민들에게시장의철시를호소하여항일독립시위의분위기를고 조시키고있었다. 그리고김윤길등은구포면사무소에서면장(面長)윤영태(尹 永台)에게한국민족으로서민족적양심에따라행동할것을요구 하면서“당신도조선사람인데왜시위운동에가담하지않는냐? 지금당장참가하라”고강박하여당시총독부통치하의한국행정 의관리들의친일적인행위를지탄하면서애국심을호소하고있다. 개항이후일본인들이한국에서약탈하는행위를직접경험한 부산․경상도지역민들에게는일본에대한적개심과저항의식이 다른지역보다강하여이로인한피해의식도더욱강하게인식 하고있었기에이러한구포장터의독립시위는그만큼강열할수 밖에없었다.따라서이를진압하기위해부산지역으로부터군경 의차출을지원받아야할정도로다른지역보다항일시위가강 열하여군경(軍警)의발포(發砲)로다수의사상자를속출하였다. 약1,000여명의한국독립시위대가경찰관서를습격함으로써 이에대해부산으로부터일본군경을지원받아진압하는과정 에서쌍방에사상자가속출하였음을기록하고있을정도로시위 대의규묘와시위가적극적이었음을알수있다. 당시구포지역의시위를중심으로하는부산지역한국민의항일 독립시위에관한상황을주기적으로조선총독부에보고하고있는 부산경남지역의일본군사령관은이시위의근저에는신학문을 습득한학생들이중심이되고있음과부산․경상도지역의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