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page

20세기부산을빛낸인물(Ⅰ) 128 서로교환할수있어이지역이경상도지역의항일독립운동을 촉진시키는기능을수행하는지역으로서역할을하였던것이다. 구포장터의 항일독립운동 서울을중심으로한1919년3월1일의3․1민족독립운동에 관한소식도이러한교회나,학교그리고장터와같은한국민들 이자연스럽게모일수있는장소를통하여전파되었다.이를계 기로항일독립운동이전국각지로파급될수있었던것이다.동 래지역이나구포지역에서의항일운동도이러한배경에서연유된 것이라할수있다.그리하여1919년3월13일학생과기독교인들 을주동으로하는동래지역군중의시위가발단이되어그후 구포,기장등지에서항일독립시위가전개되었다. 3월중순구포지역출신인경성의학전문학교학생이었던양봉 근(楊奉根)이고향구포에와서평소지면이있던구포면서기 임봉래(林鳳來)와접촉하여서울의3월1일소식을상세하게전 하고구포에서도항일독립의거를전개할것을협의하였던것이 곧구포독립의거의직접적인시발이될수있었던것이다.이후 양봉근은다음날구포지역청년윤경(尹涇)과류기호(柳基護)를 만나거사에대한보다구체적인논의를하였다. 이러한구포주민들의거사에대한계획을위한준비는3월 27-8일까지비밀리에진행되어임봉래를중심으로윤경,류기호, 김옥겸(金玉兼),김윤길(金潤吉),허정(許楨),김용이(金用伊),최종 호(崔宗鎬),유진영(兪鎭榮),윤대근(尹大根),박영초(朴永初),이수 연(李守連)등이구포장날인3월29일구포시장에서거사할것을 구체적으로계획하였다. 이에따라이들은독립선언서와태극기수백장과「대한독립 만세」를크게쓴프랭카드를만들어거사를준비하였다. 이들은3월29일구포장날아침일찍비밀리에박덕홍(朴德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