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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지역항일민족운동 127 의한선교사들과의충돌로야기될수있는열강들로부터의비난 을가능한피하려는의도에서였다.그리고교육을위한학교도 이러한역할을하는장소였다.특히지방에서주기적으로열리는 장터는총독통치하의한국민들의동향과총독부의한국민에대 한탄압그리고국내외의정세에관한정보를서로교환할수 있는역할을충분히다하고있었던지역이기도하다. 따라서한국민들의집회와시위에관한정보는모두이러한 장소에서이루어질수밖에없었던것이다.교회․학교․장터에서 전단을뿌리고독립만세를외치면서시위를행하였던것이다.때 문에당시의항일운동에는학생과선교사들의영향이크지않을 수없었다. 특히부산과같은항구도시는타지역으로부터교역을위한 인구가집중될수있었고선교사들의종교활동과신문화에영향 된교육기관의활동이다른어느지역보다활발하여항일독립의 식이강하였다. 부산․동래지역은지리적으로일본과가장근접한지역으로서 개항되는과정에서일본의불법적인침략을직접경험하여항일 의식이강열하였던지역이기에이지역의항일독립운동이다양 하고적극적으로전개될수있었던이유이기도하였다. 부산지역에서낙동강하구에위치하여해상교통의요충지로서 의기능을하였던구포와같은지역도동래지역에못지않게항 일의식이강열하였다. 구포지역의자연적인환경은남으로부산항,북으로는양산,서로 는김해그리고동으로는동래에연결되는교통상의요충지역으로서 경상지역교역의중심지로번성하였던곳이며그규묘면에서도 경상지역에서손꼽히는시장을형성하였다.따라서이지역을통하 여한국민들이자연스럽게모일수있었고여기서조선총독부의 한국통치정책과이에대한한국민의항일운동의경향에대한정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