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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흥교 121 속하였다.낙양에서서안(西安)으로가는도중에는비적에게잡 혀3일만에풀려난적도있었다.이사건으로대부분의적십자 대원들이더이상의행군을거부하자,할수없이회의를거쳐 서안행을포기하고다시상해로돌아왔다. 상해로돌아온적십자대원들은각자고향으로흩어졌고,혼자 가된한흥교는장지신의도움으로상해적십자사에서일자리를 얻을수있었다.장지신은훗날중화민국의총통이되는장개석 (蔣介石)과는가까운친척으로,한흥교가어려울때마다힘과위 안이되어주었고두사람은결의형제를맺을정도로깊은우정 을나누었다. 상해에서상해적십자병원장의요청으로남경분원에서근무하 다가항주의전(杭州醫專)교수를거쳐북경의전(北京醫專)으로 자리를옮겼다.이곳에서처음으로김규식(金奎植)과유동열(柳東 悅)을만나게된다.이때유동열이유영준(劉英俊)을보내엽총 과권총한자루씩을보관하였는데,이것이학교측에발각되어권 고사직을당하고말았다. 그해여름다시상해로돌아온한흥교는신규식(申圭植),조 성환(曺星煥)을통해신채호(申采浩)․조소앙(趙素昻)․신석우(申 錫雨)․박찬익(朴贊翊)․신무(申武)등을만나게된다.독립을갈망 해왔던한흥교는1912년이들과함께동제사(同濟社:동주공제- 同舟共濟는한마음한뜻으로같은배를타고피안에도달하자-를 표방하면서청년교육,박달학원설립,군사교육을강조하였다)를 조직하였다.또한이운동을효과적으로수행하고중국과의결속 을돈독히하고자한중호조사(韓中互助社)에참여하여중국인동 지들을규합하였다. 그러나직장이없고외국인이라신분이제대로보장되지않았 고,생활또한어려웠다.대판의전(大阪醫專)손무첨의도움으로 육군3등군의정(군소령)에임명되어북경의열하위술(熱河衛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