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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흥교 119 일본오가야마의학전문학교시절학우들과함께 (오른쪽이한흥교) 과영어학교에입학하였다. 2년간의중학과정을마친 뒤한흥교는대학에서전공 할학문분야를두고갈등하 였다.일본의조선강점이점차 현실화되어가는상황에서엘 리트로가는최우선코스인 법학이나정치학을전공하는 것이얼마나유용할지의문이었고,일본의침략을합리적으로포 장하는법학이나정치학이과연옳은것인지에대한혼란과회 의에빠졌다.결국한흥교는과학,그중에서도병든자를구해 내는인술을배우면일본에게고개숙여야될일도없을것이라 는생각에오가야마[岡山]의학전문학교에입학한다.4년뒤의 전을졸업하던해인1910년,한일합방으로조선의운명이일본이 라는거대한소용돌이에휘말려허우적거리자한흥교도자신의 진로에대한확신을갖지못한채1년남짓내과생리학연구에 만몰두하였다. 그러나조국이라는커다란고향을빼앗아간일본에서공부를 한다는것에대한죄책감과나라잃은백성으로무기력하게있 는자신에대한회의가늘가슴한켠에맴돌면서스스로를괴롭 히고있었다.이무렵손문(孫文)이이끄는1차혁명이중국대륙 을휩쓸때마침,일본에유학중이던많은중국인의학도들이 혁명에참가한다는소식이전해졌다.그리고고향에서병원설립 자금을마련해놓고여비를보내오자한흥교는망설이지않을 수없었다.고향으로돌아가느냐,남의나라이긴하지만혁명의 불꽃속으로뛰어드느냐는선택의갈림길에서한흥교는상해로 가는춘일환(春日丸)을택했다. 손문이이끄는중국혁명에는중국혁명을도와새로운국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