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page

최천택 109 (鄭撥)장군을모신정공단(鄭公壇)을개수하고봉제(奉祭)하면서 자유당정권의붕괴를지쳐보게된다. 1960년4월혁명으로자유당정권이붕괴되면서많은혁신세력 들이정치운동을재개하였다.그러나정치이념적차이때문에사 회대중당,한국사회당,혁신동지총동맹등으로사분오열분열된 채7․29총선을맞이했다.소정은이선거에서장건상과함께 혁신동지총연맹의최고위원으로활동하면서부산동구을에출 마했다.결과는혁신계의난립으로민주당이종린(李鍾麟)에게 패배했다.낙선의좌절감이채가시기전에소정은1961년5․16 군사정권이들어서자서면육군형무소에수개월간구금되었다 가풀려났다.형무소에서의후유증때문인지1961년11월좌천동 자택에서파란많은생을마감했다. 소정최천택은한말부산에서태어나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 부산을떠나지않고한평생부산에살면서부산지역민족운동의 최일선에서활동한인물이다.그의삶은항일운동에그치지않고 해방이후왜곡된정치체제에맞서반독재민주운동에헌신한우 리고장출신의진정한토박이민족민주운동가였다.비록그에게 서조직가나혁명가와같은모습을발견할수없다하더라도근 현대격변기우리고장에서한평생을올곧게산대표적인물임 에틀림없다.소정최천택은때늦은감이있지만2003년8․15 광복절을맞이하여애국훈장애족장에추서되었다. ▣부경역사연구소연구원김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