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page

20세기부산을빛낸인물(Ⅰ) 108 서폭압정치를강화하고사회주의자들을비롯한민족주의자들의 사상적전환을강요했다.그러나소정은일본이중국과전쟁을하 고,다음에미국과전쟁을하면우리나라도독립될것이라는판 단아래조국독립에대한열망을더욱불태웠다. 그결과소정은1941년장건상해외탈출사건과소설가김동리 의형인김범부(金凡夫)의해인사사건에연루되어6개월간옥고 를치르고풀려났다. 소정에게서정치적활동의제3기는해방과함께시작되었다. 1945년8월9일부터예비검속상태에있다가해방을맞은그는 8월17일건국준비위원회경남도지부결성에참가하여기획부장 으로사회주의자들과함께자주적독립국가건설에앞장섰다. 그러나1945년12월모스크바삼상회의의결정으로좌우대립 이전개되자소정은김철수(金喆壽)와함께반탁입장에앞장서 1946년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경남위원회부위원장이되었다. 그러나이무렵소정은자신의정치노선에대해많은고민이있 은듯하다.과거독립운동을함께했던좌우익의옛친구들과일 정한거리를두고정치일선에서물러났기때문이다.이후1948년 여름일제강점기신간회를통해알고지냈던강재은(姜在殷)과 함께민주중보의사장에취임하여사회운동을다시시작했다. 1950년5월2대제헌의원선거때는부산동구에서무소속으로 출마한혁신성향의장건상선거본부의사무장을맡아,이승만이 지지한김국태를압도적표차로낙선시키고장건상을국회에입 성시켰다.이를계기로소정은이승만정권으로부터눈에가시처 럼감시의대상이되었다.그결과한국전쟁이발발하자좌익계 로분류되어해방직후경남민전위원장이었던김동산(金東山)과 함께육군특무대에서심한고문을당했다.이때친구김동산을 잃게되었다.특무대에서몸을상한소정은이후뚜렷한정치활 동을하지않은채임진왜란때부산진성을사수하다순절한정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