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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천택 105 체조직을해체한다는조건으로검거된동지들이석방되는데,소 정은이일로부산공립상업학교를1년늦게졸업(1915년)할수밖 에없었다. 졸업후구세단사건으로조심스럽게운신하던소정은1917년 북만주에서무장독립운동을하던황병길(黃丙吉,1920년6월사 망)과접촉하기위해이전의구세단단원이었던김병태와장지 형을북만주에파견하여해외무장운동단체와연계를맺기도하 였다.소정의이러한움직임들은독립운동가로서만주에서활동 하고있던당숙최상훈의활동과무관하지않을듯하다. 소정의생애중활동제2기는1919년3․1운동이후각지역 에확산되기시작한청년단체의청년회운동에참여했던시기이 다. 부산지역3․1운동당시소정이어떤역할을하였는지구체적 으로알려져있지않다.그러나구세단동지로서상해에있던김 인태(1919년파리강화회의에참여한김규식의수행원)로부터 1919년2월22일일본문사(門司)로급히오라는전보를받고일 본에건너간소정은‘3월1일을기해독립운동이일어날것이니 빨리구세단조직을강화하여궐기할준비를해야한다’는김인 태의주문을받고곧바로귀국하였다.국내에돌아온소정은장 건상의조카인장지형에게급박하게돌아가고있던시국상황을 설명하고자신은울산,경주,포항의동지들에게연락하기위해 부산을떠난다.대구에서3․1운동을맞은그는곧서울로올라 가동지인김동산,강홍렬,박희창등과회합하여3․1운동의경 과를설명듣고부산으로다시내려온다. 이때부산공립상업학교2회후배백용수(白龍水)와함께재차 모의하여서울에서지하신문으로발행되던『독립신문』을등사해 집집마다뿌리면서3․1운동을재선동했다.이러한전후상황을 고려하면동래의3․1운동에적극가담했던동래고보생김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