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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부산을빛낸인물(Ⅰ) 100 으로활동하던인물들이임정에반대하면서보다효과적인항일 투쟁을위해서는민중을토대로한완전한조직과정치적․경제 적배경이급선무라고제창한고려공산당에가입하였다.이당 은러시아혁명후레닌이제창한약소민족해방운동에지대한 기대를걸고있었다.그러나장건상은이르크츠크고려공산당의 이념과목표를충분히숙지하고당에가입했다기보다는민족해 방운동을효과적으로수행하기위한방편으로이당을선택한 것같다. 이러한과정속에서장건상은당대회에서7인정치부일원으 로모스크바에서개최된제3인터내셔날3차대회에참석하고그 곳에서레닌을만나민족해방운동자금을요청했으며,그것을계 기로코민테론과이르크츠크고려공산당사이에연락업무뿐만 아니라북경을비롯한화북,만주등지의여러민족해방운동단 체간의연락도담당하였다.예컨대1921년11월부터22년4월사 이에모스크바에서개최된제1차극동피압박민족회의(FCTFE)에 관련된민족해방운동자간의연락업무등을담당하였고장건상 도한국의참가대표52인중일원으로선발되어참석하였다고 전해진다. 1923년에는북경에서김성숙(金星淑)과더불어급진적인잡지 인『혁명』을격월로발간하여약소민족의설움과항일투쟁의 정당성을강조하여국내외의젊은독자층에게상당한반응을얻 기도했다.한편1923년국내외의지역대표자들이국민대표회 를구성할당시시베리아부대표로참석하기위해상해로돌아 왔으며,그후군사통일회조직을발기하기도했다.1924년에는 임정의외교총장으로있으면서의열단의이종암(李種岩)등이비 밀임무를가지고입국하는데제반여건을주선해주었다. 1926년10월28일에는다시북경에서한국유일민족해방당촉 성회의취지문을발표하고7인집행위원의일원으로서남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