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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상 99 을미쳤다.그러다가1919년에들어그의운동은새로운전기가 마련된다. 즉,이후로는장건상이항일민족해방운동가로한국민족해방운 동사에일정한위치를확보하게되는것이다.당시거족적인국 내의3․1운동을전후하여상해는한국민족해방운동의거점이 되어약1천명에가까운운동가들이운집하고있었다.드디어이 들힘의결집으로1919년3월에프랑스조계의보창로(寶昌路) 329호건물에대한독립임시사무소가문을열고,임시정부수립 이추진되자장건상은한인거류민단의국민대회준비위원으로 활약함으로써,같은해4월11일에대한민국임시정부(이하임 정)가수립되는데산파역을담당하였다.그공로로동22일의임 시의정원회의에서의원으로선출되고외무부위원에피선되어임 정의중책을맡게되었다.또7월1일에대한적십자회가상해에 서창립되자상의원으로선출되었다. 한편장건상은의열단이만주길림에서비밀리에창단되자우 선후원자로참여하다가후에기밀부,실행부로구분․운영되는 동조직의기밀부요직을맡아깊이개입하였다.예컨대1920년2 월장건상은임정외교차장이라는신분을활용하여의열단원인 이성우(李成宇)등에게신임장을보내어그들이중국에서폭탄을 구입하여국내로반입하는데적극적으로주선해주었다. 그런데장건상은1920년말경에는당시상해임정요인들사이에 갈등이노골화되고,민족해방운동자금의고갈로임정의활동이 침체해지자상해를떠나북경으로거처를옮겼다.그곳에서1921 년5월경에운동노선을둘러싼내분과정책수립의부진등으로 그활동이미약하던임정을해체하고새로운정부를수립할것 을주장했던소위창조파(創造派)의일원으로서김립(金立)등과 조선공화정부를조직하고외무총장으로선임되어활약하였다. 한편장건상은같은해8월경당시소련의이르크츠크를거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