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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몸 움직임이 날렵하여 세칭 비장(飛將)이라 불리웠으며 주로 단 양(月陽) . 청풍(淸風) . 충주(忠州)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8년 9월 죽령(竹領) 지역에서 의병 4백여 명을 인솔하고 일군과 전 투를 전개하여 5차례의 전투를 승전으 로 이끌었고 단 한번 패전하였을 뿐, 큰 전과를 올릴 수 있었다. 그후 선생은 일경에게 체포당하여 대 구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극적으로 탈 출, 청풍(淸風)에서 잡혔으나 다시 탈출 하였다. 1909년 고종(高宗)이 원세개(表世밟) 에게 보내는 청병서(請兵書)를 가지고 가다가 인천에서 다시 체포당하여 6월 형을 받았다. 1910년 이 범 규(李範圭) . 남장희 (南밤 照)와 합세하여 의친왕(義親王)을 모시고 김규절 선생의 묘비 중국으로 망명하던 도중 중국 안동(安東)에서 발각되어 실패하였다. 1922년 군자금(軍資金)을 모금하여 독립군에게 전하기 위하여 상해로 가던 도중 인천(仁川)에서 체포되어 함흥형무소에서 5년간의 옥고를 치렀 디. 한편 이강년(李康年) 선생의 <창의일록(1昌義日錄)>을 간행하는 사업 에 참여하는 등 시종 나라를 위하는 일에 헌신하였다. 정부에서는 이러한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8년 대통령 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부천에 거주하는 유족으로는 자부(子備) 전대효(全大孝) , 손(孫) 김덕영 (金德、永), 손부(孫歸) 남상분(南相分) , 증손(曾孫) 주현(周賢) . 주원(周元) 이 있다. @ 參考文澈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제 1卷 534面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輯 309面 獨立運動I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3輯 538面 韓國獨立史(金承學) 下卷 85面 韓國人名大事典(新표文化社, 1967) 84面 獨立有功者功勳錄(國家報勳處) 第1卷 499面 84 부천독립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