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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에게 배포하면서 행진을 계속하였다. 그곳에는 전문(專門)학생을 비롯하 여 평양에서까지 원정 지원을 와서 수백 명의 학생들이 모인데다 지나가 는 수 천명의 군중이 합세하여 평화적인 만세 시위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데 야만적인 일본 기마대(騎馬隊)가 출동하여 종횡무진(織橫無盡)으로 날 뛰어 시위대를 흩어놓으니 헌병과 경찰이 동원되어 육모 방망이로 마구 때렸다. 선생은 정강이를 맞고 체포되었다. 체포된 사람은 포승줄로 한쪽 손만 줄줄이 엮어 연행하는데 선생은 서대문 경찰서로 연행됐다. 조서를 작성하기 위해 대기하는 복도에서 돌리다 남은 선언서를 업에 넣고 씹어 뱉어 선언서를 선생에게 준 동지의 체포를 미연에 막고 보호를 했다. 처 음에는 침이 있어 그런 대로되었으나 나중에는 침은 마르고 어금니는 아 프고 시간은 급해지고 등에 땀이 솟는 것을 느끼며 열심히 씹어 뱉었다. 구속 된지 3개월만에 재판이 시작되고 유죄판결로 3년간의 긴 옥고를 치르니 학교에서는 퇴학처분이 내려졌다. 사유는 ‘학생이니 잘못했다고 하 고 앞으로는 공부만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하면 훈방하겠다’는 것이나 가 슴에 매친 한(恨)이 허용하지 않아 우리가 일본에서 야만적인 행동을 하 면 당신들도 독립하겠다고 할 것이 아니겠느냐 하며 잘못이 없다고 거부 해서다. 이렇게 학생시절을 형무소(쩌務所)에서 보내고 출소(出所)해서는 일본은 후데이센징(불령선인 : 不造蘇人)으로 구분되고 경찰 수첩에 기입 되어 출타 시에는 목적지를 신고하고 귀가 시에는 만난 사람과 대화내용 을 신고해야 했다. 그러면 다음날에는 신고 받은 사람이 불려가 심문을 받고 다음부터는 만나지 말라는 경고를 받으니 선생이 지나가면 모두 외 면하고 피하게 되었다. 출옥 후에는 신고한 대로 행동을 하는지 감시하기 위하여 경찰이 미행 하고 미행이 발각되어 왜 그러냐 하면 보호하기 위해서 지시를 받았다. 경찰은 트집을 잡아 구속해야 자기네가 편하다며 경찰과 친하게 지내려면 술을 사라 하던지, 쓸 때 없는 자리에서 시비를 걸던지, 식량배급대로 먹 고 있는지 식사 검사를 하던지 지나치게 간섭이 심했는데 일본에 협조하 는 동조자를 만들고자 했으며 선생은 배타적인 행동을 하여 크고 작은 사 건이 해방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으나 지면상 생략하고 자식들은 학교에 도시락을 못 가지고 다녔는데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배급이 만주의 겉조 (밭의 조 그대로)여서 젓가락으로 먹을 수가 없어서였다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한다며 2세 교육을 위해 교원양성소 76 부천독립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