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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구(品川區) 동대기(東大뼈) 331 소재 동장(東莊) 등지에서 수 차례 비밀 모임을 갖고 혁명의식을 드높이는 한편 단결강화 및 동지 확보에 노력하 였다. 이러한 비밀 모임이 1944년 일제 경시청에 탐지되어 선생 등은 체 포되었다. 그리하여 선생과 동지들은 8월 21일 치안유지법 5호 위반으로 동경형사 지방재판소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 參考文願 . 獨立運動史資料集(獨立運動史編幕委員會) 別集 3 富川市史 l(부천시사편찬위원회) 351-352面 13) 이 길 용 (李 吉 用) (1899- 미 상) 이길용(李吉用) 선생은 부천군 부대변 산곡리 192에 거주하면서 대전역 개찰계에 근무하였다. 선생은 1920년 3. 1운동 1주년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계획되 고 있을 때 격문(敏文)을 운송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1920년 2월말 서울 부인성서학원(揮人聖書學院) 교사인 이동욱(李東旭) 과 장병준 등은 3 . 1 운동 1주년을 계기로 전국적인 만세시위운동을 계획 하였다. 1920년 2월 25일 이동욱 등은 <조선인은 작년 3월 1일의 독립 선 언서 취지를 체득 그 기념일인 3월 1일을 기하여 조선독립의 목적을 달성 하기 위하여 남녀 학생은 동맹 휴교하고, 상점은 폐점하여 조선인은 일제 히 자유만세를 높이 부르라>는 내용의 <대한독립1주년 기념축하 경고문 >을 작성하고 유진상 · 권학규 등은 이 를 인쇄하였다. 이동욱 등은 2월 28일 박자선의 방에서 각지로 전달할 격문을 묶고, 박 자선은 이것을 대전역에 근무하는 이길용과 대구 남성동에 거주하는 최일 문 · 마산 상암동에 있는 팽동주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출발하였다. 같은 날 박자선은 대전역 앞 조선여관에서 이길용을 만나 그에게 격문 뭉치를 전달하였고, 이길용은 박자선으로부터 넘겨받은 격문을 이동욱의 지시대로 대전에 거주하는 한부 및 최성운에게 전달하여 대전 시내에 배 포토록 하는 임무를 무사히 마쳤다 당시에 이길용 선생은 이동욱을 위시한 여타 인물들과의 조직적 관계는 54 부천독립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