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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월간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전원순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 서하였다 @ 參考文敵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316-322面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150-151面 判決文(1919. 10 .. 29 京城地方핑院) 獨立有功者功勳錄(國家報勳處) 第9卷 419面 10) 이 원 근 (李 元 根) (1874. 3. 17 - 1947. 2. 7) 이원근(李元根) 선생은 경기도 부천에 거주하 였다 1919년 6월 29일 이원근 선생은 이순화(李順 和) . 박기운(朴氣運) . 진응수(奏應洙) . 전여수(田 女秀) . 노원장(盧元長)과 함께 기독교를 열심히 신봉하는 신자였다. 이들은 일본의 만행에 항거하기 위하여 1919년 6월 26일 일본 천황을 규탄하는 항일문서를 서울 4대문에 붙이고 국민들에게 항일정신을 고취시켰다. 또한 태극기와 비슷 한 팔패기와 십자기를 세우고 이들은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이순화가 항일 문서를 낭독하는 동안 각자 기를 들고 찬미가와 기도를 하였다. 이것 을 목격한 일본경찰은 일제 를 우롱하는 행위라 하여 이 들 6명을 검거하였다 1920년 9월 1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공소하였으나 상고가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 였다 @ 參考文敵 : 獨立運퍼u史(國家報勳處) 第2卷 136-137따j 判決文(1920. 9. 11. 京城地方法院) 判決文(1920. 11. 10. 京城覆審필|뚱) ]]. 부천의 독립만세 운동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