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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7월 19일 경성복심법원 공소재판에서는 조명원 1년 6월, 조종서 · 문무현 · 최봉학 1년, 나머지 사람들은 태형 90대에 처해졌다. 조명원 · 조종서 · 문무현 · 최봉학은 고등법원에 상고하였으나 모두 기각 되었다 정부에서는 문무현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 서 되었다. @ 參考文敵 : 獨立펠파j史資料集(國家報勳j處) 第5輯 313-315面 獨1i運IVJ史(國家報勳處) 第2卷 152i面 獨1i.有功者功勳綠(國家報勳處) 第9卷 149벼 8) 임 용 우 (林 容 雨) 이 재 관 (李 載 寬) 차 경 창 (車 敬 昌) (1884. 9. 24 - 1919. 5. 1이 (1886 (1890 미 상) 미 상) 임용우 선생 임용우 선생은 경기도 부천군 덕적면 진리에 거주하면서 당시 사립 명덕학교 교사로 있었다. 1919년 3월 29일 정오 경기도 김포군 월관변 갈 산리 · 조강리 외에 여러곳의 이민(里民) 수 백명 이 동면 갈산리 부근에 모여서 최복석(崔復錫;김 포사람)이 만든 태극기를 들고 시위 군중들 선두 에 서고 임용우 · 윤영규(尹寧圭)와 합세하였다. 모여든 군중들은 태극기를 흔들고 조선독립만 세를 힘차게 외치면서 김포군 군하리(那下里) 공 자묘 앞과 동네 보통학교 마당 그리고 면사무소 앞 등을 차례로 지나면서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하였다. 김포군 갈산리에서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 던 임용우 선생은 자기 근무지역인 덕적도에서도 만세 운동을 전개할 것 을 결심하였다. 선생은 본인이 근무하는 명덕학교의 운동회가 4월 9일 동네 해안에서 열리는 것을 좋은 기회로 삼아 독립만세 시위를 하려고 하였다. II. 부천의 독립만세 운동 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