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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조 명 원 (趙 明 元) 조 종 서 (趙 鍾 瑞) 최 봉 학 (崔 奉 學) 문 무 현 (文 武 鉉) (190l. 7. 2 ~ 미 상) (1899. 10. 3 ~ 미 상) (1897. 3. 26 ~ 미 상) (1899. 4 ‘ 17 - 1970. 12. 22) 문무현 선생 조명원 · 조종서 · 최봉학 · 문무현 선생은 경기 도 부천군 용유면 남북리 같은 동네에 거주하였 다 서울 파고다 공원에서 시작된 3.1 만세 운동 이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자 이를 크게 기뻐하면 서 , 우리 용유면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심하고 조명원 · 조종서 · 최봉학 · 문무현은 함 께 4명이 주동이 되어 독립만세 시위 운동을 전 개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리하여 1919년 3월 23. 24일 조명원의 집에서 4명이 모여서 독립운동 단체인 혈성단(血誠댐)을 조직하고 3월 28일에 독립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시장에서 무명 천을 사다가 대형 태극기 하나를 만 들어 그 깃발에 혈성단 주도자 4명의 이름을 써넣었다. 또한 주도자 4명의 글씨로 <조선독립 만세운동을 거사할 것이니 28일 관청리 광장에 모이라>는 내용의 격문 80여 매를 작성하여 4명이 분담해 서 그 날로 남북리 · 거잠리 · 을왕리 · 덕교리 부락민들에 게 배포하고 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3월 28일 150여명의 주민들이 관청리 광장에 모여들었다. 조명원 외 3명 의 주도자들이 준비한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 시위를 선도하니 150여명 의 주민들과 이웃마을 을왕리에서 이난의(李蘭優)가 인솔하고 온 주민들이 합세하여 목이 터져라 만세 부르며 시위를 하였다. 그러나 출통한 일본 경 찰에 의해서 주도자 4명 외 다수가 현장에서 체포되고 시위 군중은 해산 되었다. 그 해 5월 22일 경성 지방 법원 재판에서 조명원 징역 2년, 조종서 징역 1년 8월, 문무현 · 최봉학 징역 1년 이난의 징역 1년 8월, 윤치방 · 김 윤배 · 윤보신 · 유웅렬 · 구길서 · 오기섭 각각 징역 6월이 선고되었다. 48 부천독립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