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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남 광 원(南 光 元) (1865. 1 .24 - 1945. 7. 26) 남광원 u휩光元) 선생은 1865년 부평군 하오정면 원종리(현:부천시 오정 구 원종동)에서 무과에 급제한 남계길과 밀양 손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의령(宜l펀)이며 자(字) 칠정(七政)이다 자라면서 숙부 남희수에게 양자로 입양되었으며 유년기와 소년기는 원종리에서 보냈다 1902년 10월 22일 대한제국의 빈민구제 의료기관인 광제원(廣濟院)의 사무위원으로 임명되어 3년간 근무하다가 일제에 의하여 1905년 을사조약 이 체결되자 ‘나라를 빼앗긴 처지에 일제 밑에서 일하기 싫다’하여 관직을 버리고 전라북도 옥구로 내려갔다. 1907년 일본제국에 의해서 대한제국의 군대 해산이 직면했을 때 전주 군산에서 일본군 기병 2명을 살해하고 권총 l정을 탈취하였다고 한다. 그 리고 국권 피탈(被쫓) 직후인 1910년 10월 4일 유창렬(柳향烈) 등과 함께 전라북도 고창과 부안 등지를 무대로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다가 일본 경 찰에 체포되었다 카 A/ 았 r 1911년 대구 공세원(控댐院)에서/ 징 역 7년형을 언도 받았으며, 1915년 소위 칙령에 의하여 징역 4년 7개월로 변경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 다. @ 參考文願 . 獨立겪 功者功勳錄(國家報勳處) 第l쌍 576面 富川市史 1卷 346-347面 재미 있는 부천이야기(최현수) 220-221面 3) 송 성 용 (宋 聖 用) (1883. 4. 20 - 1934. 2. 11) 송성용(宋聖用) 선생은 부천군 남동면 서창리에 거주하면서 농업에 종 사하였다 3월 1일을 기해서 전국 각 지역으로 조선독립만세 시위가 요원(煙原)의 불길처럼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하면서 우리 고장에서 도 만세운동을 벌일 것을 결심하였다. rr. 부천의 독립만세 운동 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