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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容雨) 선생은 자기가 봉직하는 덕적변에서도 만세 운동을 벌일 것을 결심하였다 그래서 마침 명덕학교에서 덕적의 넓은 해안가를 이용해서 운동회를 열기로 한 4월 29일을 만세 운동의 날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이 때 많은 군민들이 참석한 것을 좋은 기회로 삼아 서당 교사 이재관(李 載寬) . 합일사숙(合-私짧) 교사 차경창(車敬昌) 등이 주동이 되어 군민과 학생들이 합세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일제 자료에는 이날의 시위 모습을 ‘명덕학교 교사 임용우 주도하에 운 동회 명의로 학생 약 50명과 학부형 약 30명이 종이로 만든 구 한국기(태 극기) 약 10개를 만들고 오후 4시경 진리 해안에서 독립만세를 불렀다.’ 라고 기록하였다 이 밖에도 4월 6, 7일 이틀간에 걸쳐 영흥면(靈興面)에서 50-100명의 군중이 만세시위를 벌였다. @ 參考文敵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315-316面 경기도항일독립운동사(경기도사편찬위원회) 461面 40 부천독립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