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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대부면(大헐面)의 만세운동 전국적으로 3.1 독립 민-세 운동이 전개되고 있을 때 이 소식은 외딴 섬 지역인 대부변에도 전해졌다. 같은 동네에 사는 김윤규(金允τ) . 노병 상(1황자채) . 흥원표(싸元씨)는 3월 31 일 우연히 영전리(쉽 m 띤) 사격장에 서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전국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독립만세운동에 대 해서 비밀리에 논의하던 차 서로가 크게 기뻐하면서 뜻이 맞아 대부변에 서도 독립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그들은 그 날밤 11시경에 김윤규의 집에서 노병상 · 홍원표 셋이 모여 아껴 두었딘 포목에다가 태 극기를 그려 만들었다. 이튿날 4월 1 일 오전 3 시경 세 사람은 집밖으로 나가 태극기 를 흔들며 미친 듯이 조선독립만세 를 외쳤다. 이때 잠에서 깨어 나온 주민들 수십 명이 함께 나와서 주막집 권도일 (隔退 1::1)의 집 앞에까지 행진하면서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하다가 출동한 일본 경찰에 의하여 주도자는 체포되었다. 이 로 인하여 김윤규 · 노병상 · 홍원표는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 월형을 언도 받고 1919년 6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 공소한 것이 기각되었 고 다시 8월 11일 고등법원에 상고하였으나 모두 기각되었다. @ 參考文않k : ð1'.4)-\~i;필폐j史資;jf1i-:ft(1햇l家해勳1월) m5!1펴 311-3121비 7) 덕적면(德積面)의 만세운동 1919년 3월 29일 오후 2시경 인큰 지역인 김포군 갈산리에서 잡화상을 하던 최복석(崔짜錫)이 자기가 직접 만든 태극기 를 들고 선두에 서서 만 세를 부를 때 임용우(林容雨) . 윤영규(尹寧~IJ도 선두에서 합세하여 독립 만세 시위를 하였다. 이때 모여든 면민들은 김포군 군하리(郞下맨) 공자묘 앞과 동네 공립보통학교 운동장 및 면사무소 앞 등을 차례로 지나면서 만 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 일 후에 부천군 덕적면 진리에 있는 사립 명덕학교 교사이던 임용우 II . 부천의 독립만세 운동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