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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용유면(龍遊面)의 만세운동 부천군 용유면 남북리(南北뿔) 868번지에서 농업에 종사하던 조명원(웹 明元)은 1919년 3월 23- 24일 같은 동네에 사는 조종서(超鐘瑞) . 최봉학 (崔奉學) . 문무현(文武鉉) 등과 협의하여 혈성단(血誠團)이라는 단체를 조 직하고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기로 합의하였다. 이들은 4월 28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무명 천을 사들여 대형 태극기를 만들고 깃발에 <혈성단 주모자 조명원 · 조종서 · 문무현 · 최명교(최봉학 의 별명)> 라고 썼다. 조명원 외 3명의 글씨로 <조선 독립 운동을 거사 할 것이니 4월 28일 관청리 광장에 모이라>는 내용의 격문 80여장을 만 들었다 네 사람은 용유면의 남북리 · 거잠리(巨廳뿔) . 을왕리 (ζ狂댈) . 덕 교리(德橋里) 주민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격문을 배부하고 독립 만세 시위 운동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였다. 4월 28일 이틀은 관청리 광장에 모여서 무명 천으로 만들어 두었던 대 형 태극기를 떠받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선도하니 150여명의 주민들이 뒤따르며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때 이웃 마을에 사는 이난의(李蘭廢)가 이끌고 온 을왕리 주민들도 합류하여 함께 만세를 부르며 힘을 돋우었다. 특히 이 만세 운동에서 윤 치방(尹致芳) . 김윤배(金潤培) . 윤보신(尹술멀) . 유웅렬(柳雄烈) . 구길서( 具吉뿔) . 오기섭(吳基燮) 등은 앞장서서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일본 경 찰에 체포되었다. 이 만세 운동으로 이들은 재판에 회부되어 조명원 징역 2년, 조종서 징 역 1년 8월, 최봉학 · 문무현은 각각 징역 1년 6월 김윤배 · 윤치방 · 윤보 신 · 유웅렬 · 오기업 · 구길서는 각각 징역 6월 이난의는 징역 1년 8월형 을 받았다. 이후 7월 19일에 경성복심법원 공소 재판에서는 조명원이 1년 6월, 조 종서 · 문무현 · 최봉학 1년, 나머지 사람들은 태형 90대에 처해졌다. 조명 원 · 조종서 · 문무현 · 최봉학은 고등법원에 상고하였으나 모두 기각되 었 다. @ 參考 文폐 獨\'l댄폐j史資料集(탤I~{$j{勳l쉴) m5ir펴. 313-3141껴1 38 부천독립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