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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한 일본경찰이 섬혁성을 다시 잡으려고 쫓아 가려하자 군중들이 경찰의 앞을 막고 추격하지 못하도록 길을 가로막았다. 이 때 경찰들은 자기들을 가로막는 군중들을 향하여 칼을 빼어 무차별 휘두르는 가운데 군중 속에 있던 이은선(李股先)이 칼에 찔려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고 수명이 부상 을 입게 되었다. 그날 밤 이은선(李股先)의 6촌 되는 친척 이담(李禮)이 이 소식을 듣고 분개하여 이은선(李股先)의 죽음에 항의하기 위하여 동네의 모든 사람들 을 동원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당시 계양면의 면장이던 안병혁(安炳麻)을 설득하여, 그 때 면서 기로 있던 이경응(李敬應)을 시켜서 면장 명의로 면민에게 통문을 보내기 로 하였다. 이 때 통문은 이담(李澤)이 면서기인 이경응과 임대규를 데리고 송희진 집에 가서 이담이 부르는 대로 이경응이 작성하였다. 그 내용을 보면 ‘오 늘 시장에서 일본 순사에게 사람이 죽었는데 그 피살된 이유를 주재소에 가서 질문할 터이니 죽은 사람에게 동정을 표시하는 자는 오후 12시까지 면사무소에 집합하라’ 는 것이었다. 밤이 되자 면사무소에 모인 사람은 200여명이 넘었다. 이들은 면장 안병혁(安炳麻)과 면서기 이경응과 함께 주재소로 가서 이은 선의 죽음을 항의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막상 일본말을 잘 알고 있는 면 서기 이경응이 가서 통역을 해야 하는데 이를 거절하고 나오지 않았다 성난 군중들은 분명히 이경응이 이은선의 죽음에 대해서 어떤 관련이 있 기 때문에 군중들이 무서워 나타나지 못하는 것으로 단정하였다. 이에 이담 · 최성옥(崔成玉) . 전원순(全元順) 등은 군중들을 지휘하여 먼저 계양면 선주지리(仙住地핀)에 사는 이경응의 집에 몰려가서 그의 집 을 부셔버리자고 선동하였다. 낮에 시위에 참여했던 군중들은 여기 합세 하였고 전원순은 이경응의 집 바람벽을 부수고 가구를 깨뜨려 버리고, 최 성옥도 그 집의 대문과 바람벽을 부수고 가재 도구를 깨뜨려 버리는 등 선두에서 기세를 돋우었다, 그리고 시위 군중들은 다시 면사무소에 몰려 가서 만세 시위를 벌인 다음 해산하였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하여 시위를 주도했던 심혁성 · 이태현(李쫓鉉) . 이 담 · 최성옥 · 전원순 · 임성춘 등은 소위 보안법 위반 · 소요 직무집행 방해 죄목으로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옥고를 치러야 했다. lJ. 부천의 독립만세 운동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