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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선호하였다. 이들의 운동을 보통 ‘애국계몽운동(愛國양豪運動)’이라고 부른 다. 이 운동은 의병운동과는 달리 정치운동의 성격도 강해서 근대국민국가는 영국, 일본과 같은 입헌군주제(立憲君主制)나 프랑스, 미국과 같은 민주공화제 (民主共和制) 국가로 가야 한다는 민족운동에도 힘을 쏟았다. 이들 계몽운동 가들과 그 후계자들은 한일합병 이후에는 보다 근대국가적 의미의 독립운동 노선을 세우고 투쟁하는데 노력하였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독립군을 기 반으로 하는 무장투쟁 노선에 합류하였고, 1917년 신규식 (申奎植), 조소앙(趙 素昆) 등이 해외 독립운동가들의 민족대회의를 통한 임시정부 수립을 제안한 「대동단결선언(大同團結宣言)J. 1918년 만주 노령지역에서 발표된 「무오독립 선언(여午獨立宣言)J 그리고 1919년 3 . 1운동을 거치면서 민주공화제에 입각 한 정부수립 운동을 제창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우리 근대 역사는 물론 수난의 역사였다. 특히 독립운동가 박은식(朴股植) 선생의 표현을 빌리면 백성이 일으킨 군대라는 뜻인 민군(民軍)과 그 가족, 친지들의 수난이 특히 컸다. 1984년 농민전쟁으로 일본군에 저항하다가 살해 당한 농민은 30여만 명, 1895년 이래 의병으로서 일본군에 저항하다가 살상 당한 사람들 역시 30여만명 정도에 이르고 있다는 기록을 선생의 『한국독립 운동지혈사(韓國獨立運動之血史)JJ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선조들의 노력으로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서 우리 자 신의 국가와 문화로써 우리식 삶의 방식을 나름대로 지켜나가고 있다. 그러한 오늘의 시점에서 본다면, 그 수난을 피로써 지켜낸 농민, 의병, 독립군을 위시 한 독립투사들과 그분들을 지지하고 그 분들의 정신을 계승한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수난의 역사는 곧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자랑스러운 선조들의 독립 투쟁, 민족해방투쟁의 영광의 역사이기도 하다 절길에 버려진 한국인의 학살된 시체들 I . 한 일합병과 독립운동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