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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전세계에 드높이 선포하면서 인영이 비록 18의 지옥에 들어가더라도, 지독한 고통을 당하더라도, 기쁘고 즐겁기 한량 없겠습니다. 1. 이완용은 러시아와 일본에 붙어서 조약체결의 선두에 섰으니 꼭 죽 여야함. 2. 권증현은 이미 조약체결을 인정했고 농부(農部)의 일국(一局)을 외인 에 게 양보했으니 꼭 죽여 야함. 3. 이하영은 조약체결이 그 손에서 나왔는데도 속으로는 옳다 하고 겉 으로는 그르다 하여 백성을 속였으니 꼭 죽여야 함. 4. 민영기는 조약체결이 안으로는 옳고 밖으로는 그르다 하여 전국 재 정을 모두 외인에게 주어버렸으니 꼭 죽여야함 5. 이지용은 갑신년의 의정서와 을사년의 신조약이 모두 그 손에서 나 왔고 매관매직하여 나라를 망하게 했으니 꼭 죽여야함 6. 박제순은 외무대신으로 조약 맺어 나라를 팔고 또 참전대신으로 정 권을 양도했으니 꼭 죽여야함 7. 이근택은 이미 조약체결을 허락하고 공을 세운다 하여 폐하를 위협 하고 백성 들에게 독을 뿌렸으니 꼭 죽여야함 ※ 홍암 나절(羅喆)의 본명은 인영(寅永)이다. 1 863년(절종 14년)에 전남 보 성에서 출생하고 29세에 장원급제로 승정원 가주서(假注書)를 지냈으나 일본의 침략이 심해지자 관직을 사임하고 1904년에 유신회라는 비밀단체 를 조직하여 구국운동을 하다가 1905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동양평화를 위하여 한 · 일 · 정 삼국은 상호 친선동맹을 맺고 한국에 대하여는 선린의 교의로써 부조(技助)하라”는 의건서를 일본 정객들에게 제시했 으 나 응답 이 없자 일몬 궁성 앞에서 3일간 단식투쟁을 하고 귀국할 때 매국노들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고 단도 두 자루를 사왔다. 1907년 암살계획을 추진하 다가 탄로되어 10년의 유배형을 받고 무안군 지도에 유배되었으나 고종의 특사로 둘려났다. 1908년에 일본으로 다시 가서 구국운동을 했으나 소득 없이 귀국하여 오기호, 강우, 유근, 정훈모 등과 서울 제동에서 단군대황 조신위(擔君大皇祖神位)를 모시는 단군교의 제천의식을 거행하고 공표 하 였다. 1910년 8월에 단군교를 빙자한 친일문자들의 행각으로 대종교(大f宗 敎)로 개명하였다. 1911 년에 강화도 마니산 제천단과 평양의 승렁진을 순 N. 독립관련 문헌 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