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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최 진 동(崔 鎭 陳) (1913. 4. 5 - 미상) 이 명 : 진우(鎭禹) 최진동(崔鎭싸) 선생은 서울 서대문(템大門) 출신이다 선생은 일찍이 부친 최희관(崔喜觀)을 쫓아 중국으로 건너가 남경(南 京)에서 중국 중앙육군학교를 졸업한 뒤 공병보충단(I兵補充團)에서 근 무하였다 일본이 무모하게도 전쟁을 중국대륙에서 다시 태평양상으로 확대함으로 인하여 부족한 인적자원을 보충하기 위하여 지원병, 징병, 징용 등의 명칭 으로 우리 국내의 수많은 청년들을 일선으로 이끌어내었다. 우리 청년들에게 무장을 시키는 것이 일본에게는 모험이었으나, 일제는 그 병력을 메꾸기 위하여 제 무덤을 파는 일을 감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임시정부나 광복군에서는 이들 일선에 나간 청년들을 초모하는 공작을 펴는데 특별 노력을 하였다. 선생은 조선의용대(펜j熊義勇隊)에 가담하였다가 1942년 5월에 조선의용 대가 광복군 제1지대로 편입됨에 따라 광복군에 입대하여 지대본부 요원 으로 활약하였다 광복군 제 1지대는 대동 · 태원(太原) . 석가장CE家파) . 임분(認하) 등지 에 거주하는 한국교포들을 만나 초모선전 · 첩보공작을 폈으며, 1942년 광 복군이 개편될 때까지 적진 깊숙이 들어가 초모활동과 항일공작을 충실히 전개하였다. 선생은 광복군 제1지대[지대장:송호성(末虎聲) ] 제1분대[분대장:정훈(鄭 勳)]에서 분대원으로 활약하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대통령 표창, 1977년에 건 국포장,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부천에 사는 유족으로는 자(子) 최석순(崔石淳) 자부(子歸) 손순자(孫順 子), 손(孫) 수정 · 영 훈(永勳)이 있다. @ 參考文뚫:k : 합國獨立史(金承學) 下卷 294i효i 明治 뎌年史홉쫓書(金正明) 第2卷 719面 日 帝慢略下韓國36年史(國史編뚫찾員會) 第12卷 725面 獨立週펠]史(國家報勳處) 第6卷 383 . 610面 獨立有功者功勳錄(國家報勳處) 第5卷 1,100때 176 부천독립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