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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만 일제 하에 있을 뿐 밤에는 대한민국이 된다고들 하였다. 또한 당 시 일정(더政) 군수 최원순(崔元淳)은 오히려 임시정부의 활동에 협조하 여 솔선하여 애국헌금 1백원도 각출하고, 보내주는 <독립신문>의 애독자 가 되었다가 나중에 파면되었다. 그러나 1920년 창성 출신 이용익이란 자 의 밀고로 임시정부 창성군 조직의 임원 일부와 청년 300여명이 체포되 어, 모진 고문을 받아 피검자들 중 불구가 된 사람이 많았다. 선생도 이때 체포되어 1920년 11월 6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월형을 언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선생은 옥중에서 혹독한 고문으로 불구가 되어 출옥하였으며, 일경의 감시를 피하여 중국 산서성으로 망명하여 항일운동을 계속하였다. 기술한 바 임시정부 연통제의 관련자들에 대한 대검거가 있은 후 다수 의 청년들이 강을 건너 만주로 탈출하여, 대부분은 독립군이 되어 활동하 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80년에 대통령 표창, 1990년에 건 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부천시에 거주하는 유족으로는 자(了) 장동근(솔束恨)이 있다. @ 參考文없* : 身分1帳指放照1r1 1르l해펀: 멤j띠、f: G!:族j핑퍼1;年짧 105n비 며삶隊I ð\'J\l îd띨llVJ史(文-[Ç) 175. 194벼I ð\'~~~d핏llVJ史(陸l家報勳處) 껑'S2:fÆ 474 . 476벼i 쐐立j필펴I史(國l家報勳週) 第4강 2841i비 3ffiJ立쑤j功者功勳錄(隊l家報勳處) 第5卷 770lil:j m 광복후 부천거주 독립운동가 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