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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이 윤 명 (李 潤 明) (1884. 4. 14 - 1909. 12. 30) 이 명 : 동하(東屬) , 경 학(敬學) 이윤명(李潤明) 선생은 경상북도 울진(蘭珍) 출신이다. 1906년 3월 각지에서 의병(義兵)이 봉기하고 신돌석(申흥石) 의병장이 울진(節珍)과 평해(平海)에서 의병(義兵) 5백여명과 더불어 창의의 기치를 올리자 선생은 의진에 입대하여 군령장(軍令將)으로 활약하였다. 1907년 2월 신돌석의 의진이 울진을 야습(夜靈)하여 탈환하였을 때, 울 진 내(內)에 의병 수 명을 잔류시켰는데 이들에 대비하기 위하여 일군 1 개 소대병력이 상주하고 있었다. 이 정보를 포착한 의진은 신돌석 의진과 성익현(成益鉉) 의진이 합진하여 재탈환하는 데 성공하였다. 1908년 2월 성익현 부대가 칠보산(七寶山)에서 적과 접전하던 중 많은 사상자를 내면서도 일본 헌병들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이때 송병준(宋秉曉)이 의병 해산 선유사(義兵解散宣論使)로서 일제 통감부와 협조하여 이 일대에 일본 헌병을 증파시켜 우리의 의병을 산간지대로 몰 아 포위망을 압축시켜 왔다. 그러나 의병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분진항전 (分陳抗戰)을 계속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경태(鄭敬台) 의진은 울진 전투에서 130여명의 전사자를 내었으며, 그해 8월에 당시 포군(뼈軍)으로 활약하던 이윤명(李潤明) 선생은 적에게 체포되어 대구에서 사형 , 순국(狗 國)하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83년 대통령 표창,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부천시에 거주하는 유족으로는 손(孫) 이희수(李照洙) , 손부(孫揮) 한매 희 (韓梅姬), 증손(曾孫) 정 교(政敎) , 증손부(曾孫歸) 하순천 (河純天), 고손 (高孫) 일선(日 善)이 있다. @ 參考文敵 . 申룡石將軍實記 23面 용판珍義兵史 427 . 428 . 429 . 431 떼 獨立有功者功勳錄(國家報勳處) 第1卷 839面 152 부천독립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