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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77년 대통령 표창, 1991년 건국훈 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부천시에 거주하는 유족으로는 자부(子歸) 공금복(孔金福) , 손(孫) 이윤 식(李潤植) , 손부(孫歸) 배정연(裵貞淵) , 증손(曾孫) 용석(庸碩) . 숙영(淑 英) . 은영 (恩英), 증손부(曾孫歸) 안인옥(安仁玉) , 고손(高孫) 현종(영宗)이 있다. @ 參考文敵 : 獨立運펴I史(國家報勳處) 第3卷 88. 89面 獨立運따1;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1111 . 1112 . 1113 . 1115面 獨立有功者功勳錄(國家報勳處) 第3卷 83벼j 孫子 李潤植씨 證름 36) 이 병 도(李 內 憲) (1923. 5. 11 - 1991. 1l. 21) 이병도(李困熹) 선생은 경상남도 하동(河東)에 서 태어났다. 1940년 부산(쏠山)의 부산제2상업 학교(옳山第 二商業學校연+ 동래중학(東菜中學) 학생들의 반 일궐기 당시 선생은 부산2상(쏠山二商) 5학년 학생으로 이 반일궐기의 주동 인물이었다. 1940년 11월 23일 제2회 경남 학도전력증강국 방경기대회(慶南 學徒戰力增彈 國防鏡技大會)라 는 것이 부산 구덕산(九德山) 밑의 공설운동장에서 열렸는데, 이 대회는 일본인 학교의 우승을 위하여 처음부터 여러 가지 간책이 마련된 대회였 다. 심판장을 맡았던 일본군 대좌(大佑) 노다이(乃台暴治)와 일본군 장교 로 구성된 심판진들의 계획된 부당하고 부정한 심판으로 일본인 학교가 우승하자, 부산2상(옳山二商) 학생들이 항의하였으나 심판장인 내태(乃台) 는 이를 묵살하였다. 부산2상(쏠山二商)과 동래중학교(東素中學校) 학생들은 일인 심판진에 항의하는 의미로 폐회식에 불참(不參)하려 하였으나, 학교당국의 강경한 148 부천독립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