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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면사무소를 습격하고, 투석과 친일파에 대한 폭력행사 등의 사태가 발생하자 헌병과 경찰은 시위대에게 발포하기 시작했다. 강화의 3.1만세운동은 3월 중순부터 4월 중순까지 1개월간 강화 13개 변 전지역에서 일어났으며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도 하였 지만 각 동리 단위로 초저녁 시간에 산 위나 언덕에 햇불을 올리고 만세 를 고창한 사례가 많았다 이 운동은 경기도내의 만세운동으로서 가장 규모가 컸으며 2만여 명이 참가한 우리 나라의 항일역사에 길이 남을 대규모 시위였다. 그 와중에서 이채로운 일로는 순사보 염이선의 증언에 의하면 ‘유봉진 은 군수와 서장 이(李) 경부에게도 만세 부르기를 강요하였으며, 서장 이 (李)경부가 “만세”하고 부르니까 “만세만으로는 안된다” “조선독립만세”라 고 부르라’ 하였다고 한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일제에 기소된 사람은 모두 39명인데 그 중에서 유 봉진 · 염성호 · 유희철 · 장동원 등 14인이 실형을 언도 받았다. 선생은 이해 12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 로 징역 10월형을 언도 받아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 였다. 부천에 거주하는 유족으로는 자(子) 유장열(劉將烈)과 자부(子歸) 한경 희(韓環姬)가 있다 @ 參考文敵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156 . 157 . 158面 獨효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335-343面 京幾追抗 日 獨立j훨llW史(京繼道史偏흉委員쉽) 480-489面 獨立有功者功勳錄(國家報勳짧) 第9卷 285따i 136 부천독립운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