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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사령부의 선전 및 초모활동을 지원하는 한편 한국독립당원으로서 항일 전선에 앞장섰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대통령 표창, 1980년에 건 국포장,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부천에 저주하는 유족으로는 자(子) 송병하(宋炳河) , 손(孫) 왕근(묘根) , 손부(孫歸) 이금미(李鎬米) 증손(曾孫) 민섭(民燮) . 연아(婚兒)가 있다. @ 參考文敵 : 韓國獨立史(金承學) 下卷 172面 I꿔治百年史輩뿔(金正明) 第2卷 720面 日 帝{훗m各下韓國36年史(國史編幕委員會) 第12卷 725面 日 帝慢略下韓國36年史(國史編暴委員會) 第13卷 279 . 470 . 608 . 613面 臨時政府議政院文書(國會圖書館) 772 . 857面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4卷 981面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제6卷 608面 獨立有功者功勳錄(國家報勳處) 第5卷 97面 宋福德、 선생의 子 宋炳河 선생의 證言 21) 신 재 원(申 在 元) (1860. 11. 9 - 1930. 8. 7) 신재원(由在元) 선생은 경기도 양평(楊平) 사 람으로 천도교인(天道敎人)이다. 1919년 3월 23일 청운면(품雲面)용두리(龍頭 里) 장날을 이용하여 정경시(鄭慶時) . 김종학 (金鍾學) . 민주혁(閔周柳) 등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를 주몽하였다. 선생은 3월 1일 천도교 교주 손병희(孫秉照) 등 민족대표가 독립선언을 한 이래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알고 정경시와 만나 용두리 장날인 3월 23일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선생은 3월 23일 정경시와 함께 용두리 시장으로 가던 중 김종학과 민 118 부천독럽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