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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에 거주하는 유족으로는 부(歸) 김영화(金永化) , 자(子) 박승철(朴勝 哲). 자부(子歸) 임정자(林貞子) 손(孫) 명애(明愛) . 명은(明恩) . 은주(恩 周)가 있다 @ 參考文鳳 : 身分l帳 指救照會 며報뿔 獨立有功者功勳錄(國家報勳處) 第10卷 151面 朴朱陽 선생의 4함 金永化씨 꿇言 19) 성 달 영 (成 達 永) (1873. 6. 15 - 1933. 1l. 3) 성달영(成達永) 선생은 충남 아산군 도고면 석당리(牙山那道高面石堂 里) 사람이다. 선생은 1905년 을사조약(ZG條約)이 늑결(動結)되자 이에 통분하여 실 제(實弟)인 성문영(成文永)을 비롯하여 김재정(金在貞) . 김기우(金箕祐) . 박제현(朴齊賢) . 박창노(朴昌쩔) . 박윤식(朴潤植) 등과 함께 국권을 회복 하기 위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선생은 민종식(閔宗植)의 의진(義陣)에 종 군하여 홍주성(洪州城) 전투에서 일군을 맞아 싸웠으나 신예무기와 조직 화 된 일군에 패하고 말았다. 그후 다시 의병을 모집하여 봉기를 계획하였으나 일진회(一進會)의 밀 고로 피신하여야만 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康或國따)를 당하자 독립방안을 모색하던 선생은 1913 년 경북 풍기에서 항일 비밀결사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이 조직되자 이 에 입단하여 안으로는 독립의식을 고취시키고 군자금을 모금하는 한편, 밖으로는 만주 등지의 독립군과 제휴하면서 일제와 친일분자의 타도를 위 하여 헌신하였다.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는 풍기의 대한광복단과 대구의 조선국권회복단 (한!빡國權回復團)의 일부 인사들이 제휴하여 결성한 혁명단체로서 국내에 서 군자금을 조달하여 만주의 독립군 기지에서 혁명군을 양성하고 또한 국내에서 확보한 혁명기지를 기점으로 적시에 봉기하여 독립을 쟁취할 것 을 계획하였다 이때의 행동지침은 비밀 · 폭동 · 암살 · 명령의 4대 강령이 었고, 각처에 곡물상을 설치하여 혁명기지로 삼는 한편, 혁명계획은 군자 III. 광복후 부천거주 독립운동가 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