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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박 석 진(朴 錫 震) (1874. 4. 29 - 1927. 2. 19) 박석진(朴錫震) 선생은 함남 이원(利原) 사람이다. 선생은 독실한 천도교인으로 서울 천도교 본사의 연락을 받고 같은 천 도교인 및 기독교인들과 합세하여 1919년 3월 10일 이원군 이원읍(利原那 利原눔)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고 김준태(金溶泰) 등과 이 원 읍내에 조선독립단(朝蘇獨立團)을 설치하여 군내 각 지방에 독립선언 서를 살포하고 또 3월 20일에는 만세시위를 계속하려다가 일경에 피체되 었다. 그해 6월 20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언 도 받고 공소하였으나 8월 18일 경성복심법원과 10월 25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기리어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 다. 부천에 거주하는 유족으로는 자(子) 박천덕(朴天德) 손부(子歸) 김진희 (金鎭喜)가 있다. @ 參考文歡 : 쩌事控訴事件觸 判決文(1919. 10. 25 高等法院) 獨立有功者功勳錄(國家報勳處) 第11卷 117面 15) 박 성 준(朴 成 俊) (1900. 1, 1 - 1975. 2. 9) 박성준(朴成俊) 선생은 강원도 고성군 신북면 장전리에 거주하였다. 1910년 일제에 의한 강제 한 · 일합방이 체결되 자 경남 동래군 동래읍에서는 일제가 주관하는 축하행렬이 진행되고 있을 때 선생은 그 행사를 보고 분개하여 축하행렬을 향하여 투석을 하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구류처분을 당하였다. 1915년에 는 일본이 중국 청 도(품島)를 함락시 켰 m 광복후 부천거주 독립운동가 109